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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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국인이라면 누군가가 자기 의견을 펼쳤을때 – 이건 언제나 무모한 짓이지- 그 의견이 옳은지 그른지는 따져 볼 생각조차 안해. 그는 오로지 의견의 주인이 그것을 믿는지 안믿는지만을 문제삼을 뿐이야. 이봐, 의견의 가치는 그 의견을 표현한 사람의 진심과 전혀 상관이 없어. 실제로는 의견이 진심과 거리가 멀수록 지적인 가치는 더 높을걸. 그래야 의견이 개인적인 바람, 욕망,편견에 오염되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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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래서 시인들이 싫어. 예술가는 아름다운 걸 창조해야 하는 법이지, 작품에 자기 인생을 쏟아부어서는 안돼. 우리는 예술을 일종의 자서전으로 간주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 추상적인 아름다움이 뭔지 아무도 모른다니까. 앞으로 내가 세상에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 줄 거야. 그런 이유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는 공개하지 않을 거고
하지만 도리언은 가끔 끔찍할 정도로 뭇미해. 내게 고통을 주면서 기뻐하는 것 같다니까. 해리, 그러면 나는 내 영혼을 외투에 장식할 꽃 한 송이 정도로, 자기 허영심을 만족시킬 장식품 정도로, 여름날에 어울리는 소품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에게 통째로 갖다 바쳤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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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슬픈 일이지만 천재성이 아름다움보다 오래간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거든.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려고 그토록 애쓰는 거야. 존재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다 보니 불멸의 무언가를 갈망하게 되지. 그래서 정신에 온갖 쓰레기와 지식을 채워 넣어, 필멸의 삶을 극복하겠다는 멍청한 바람으로. 철저하게 박식한 인간, 그게 우리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이지.
어느날 갑자기 도리언의 얼굴이 살짝 불균형하게 느껴지겠지, 아니면 낯빛이 마음에 안든다거나.
낭만의 가장 나쁜점은 결국 인간에게서 낭만을 뺴앗는다는 거야.
바로 변덕 때문에 네가 느끼는 걸 나도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충실한 사람들은 사랑의 쾌락밖에는 몰라. 충실하지 않은 사람들이야말로 사랑의 비극까지 아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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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은 자신을 발달시키는 겁니다. 천성을 완전하게 실현하는 것, 그게 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지요. … 어쩌면 인간은 한 번도 용기를 내 본 적 없을지 모릅니다. 사회를 향한 두려움은 도덕의 근간이고 신을 향한 두려움은 종교의 비결이에요. 두 가지가 우리를 규율하지요. 그러나….
인간이 자기 인생을 완전히, 완벽히 살아낼 수 있다면, 모든 감정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면, 모든 생각을 표현해 낼 수 있다면, 모든 꿈을 실현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참으로 신선한 기쁨의 충동을 얻을테고 우리는 중세 시대에 서 비롯한 모든 병폐를 잊어버린 채 헬레니즘이 추구하는 이상향으로, 어쩌면 그보다 더 훌륭하고 풍요로운 것으로 회귀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 중 가장 용감한 자조차 스스로를 두려워하잖아요. 비극적이지요. 제거하려 했던 인간의 야만성이 자기 부정이라는 기형적인 괴물로 살아남아서 우리 삶을 뜯어먹고 있으니. 우리는 자신을 부정한 대가로 벌을 받고 있습니다. 충동을 질식시키려고 애쓰니 그것들이 우리 내면을 뒤덮고 독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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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도 그런 식으로 그를 자극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음악 때문에 여러 번 골머리를 앓았다. 다만 음악은 이토록 능변가가 아니었다. 음악이 사람의 내면에 만들어 내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아닌 낯선 혼돈이었다. 그런데 말은! 겨우 말 따위가! 말이란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명확하고, 생생하고, 잔혹한지! 말에서 도망치기란 불가능했다. 그 안에는 미묘한 마법이 있었다! 형체 없는 것에 실질적 형체를 부여하는 데다가 비올이나 류트처럼 자기만의달콤한 음악성을 지닌 듯했다. 한낱 말인데! 세상에 말만큼 강렬한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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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천재성의 한 형태고, 실로 천재성보다도 훌륭한 겁니다.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것 중 하나죠. 햇볕이나 봄날 같은 거예요. 우리가 달이라고 부르는, 새카만 수면 위에 비치는 은색 조개껍데기 같은 것. 아름다움에는 질문의 여지가 없어요. 자기만의 신성한 권리가 있죠. 아름다움은 그것을 가진 사람을 군주로 만듭니다. … 사람들은 아름다움이 피상적이라고 말하지요.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사상만큼 피상적이지는 않아요. 내게 아름다움은 세상의 온갖 경이로운 것 중에서도 단연 으뜸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건 속물적인 짓이에요. 진정한 수수께끼는 보이는 것에 있지, 보이지 않는 데에 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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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인생이 비밀을 드러내 보일 떄까지 기다렸지만 선택받은 소수는 베일이 걷히기전에 스스로 삶의 수수께끼들을 찾아냈다. 때때로 그것은 예술, 그중에서도 열정과 지성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문학이라는 예술의 효과였다. 그러나 가끔은 복잡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예술의 자리를 차지해서 그 역할을 도맡았고, 실로 매력적인 인물은 그 자체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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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의 순전히 감각적인 본능에서 출발한 사랑에 상상력이 작용한 결과, 그 사랑은 도리언의 눈에 감각과 거리가 먼 듯 보이는 무언가로 바뀌었고 다름 아닌 그 이유로 훨씬 더 위험한 것이 되어 버렸다. 세상에는 뿌리에 대해 거짓말을 하게 하는 사랑이 있었고, 그런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강력하게 집어삼켰다. 우리가 그 본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행동 동력일수록 영향력은 가장 미미했다. 그리고 우리가 타인을 대상으로 실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실험 중일 때도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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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세기에 살고 있으나 19세기 이전에 부흥했던 사상들의 열정ㅇ과 생활 방식을 시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세계의 정신이 훑ㅌ고 지났던 다양한 감성을 자기 인생 안에서 요약하려는 것이었고, 인류가 바보처럼 덕목이라고 칭했던 금욕과 현명한 자들이 여전히 죄악이라 부르는 자연스러운 저항을 그저 그 인위성을 이유로 사랑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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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그를 만나면 그런 명예롭지 못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세상의 마수가 닿지 않았던 것 같은 외모를 유지했다. 상스러운 말을 내뱉던 사람들조차 도리언 그레이가 등장하면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에 감도는 어떤 순수한 분위기가 그들을 꾸짖는 것만 같았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그들은 자신들의 더럽혀진 순진무구함을 떠올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도리언처럼 매력적이고 우아한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비도덕적이고 퇴폐한 시대에 물들지 않을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도리언은 때때로 친구들, 혹은 자기가 도리언 그레이의 친구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 갖가지 추측을 낳게 하는 수수께끼 같은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잠겨 있던 방으로 올라가 주 곧 소지하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한 손에 거울을 든 채 바질 홀워드가 그려 준 초상화 앞에 서서 캔버스 위의 추악하고 늙은 얼굴을 보고, 또 잘 닦인 유리 위에서 그의 미소에 화답하는 아름답고 풋풋한 얼굴을 들여다보아싿. 두 얼굴 사이의 극명한 차이점이 도리언의 쾌락 감각에 박차를 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한층 스스로의 정신적 타락에 흥미를 느꼈다. 세심한 눈길로 종종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기쁨을 느끼며 이마와 음울하고 퇴폐적인 입 주변에 잡힌 흉측한 주름들을 살펴보면서 죄악의 흔적과 노화의 흔적 중 어느것이 더 끔찍할지 저울질해 보기도 했다. 그는 초상화 속의 거칠고 퉁퉁한 손 옆에 뽀얀 손을 가져다 대고 미소 짓고는 했다. 그 기형적인 몸과 못생긴 사지를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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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손으로 초래한 영혼의 파멸에 관해 떠올리게 되었고, 순전히 이기적이라서 더욱더 절절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밤은 드물었다. 삶을 향한 호기심, 오래전 바질 홀워드의 정원에서 그의 곁에 앉았던 헨리 경이 자극한 내면의 호기심은 점점 자라나며 희열을 선사했다.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알고 싶은 갈망도 더 커졌다. 도리언의 내면에는 먹이를 줄수록 더 왕성해지는 광적인 허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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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는 단테가 “아름다움을 숭배함으로써 완벽한 존재로 거듭난 사람들”이라고 묘사한 인물로 보였다. 테오필 고티에가 말한 것처럼 그는 “눈에 보이는 세계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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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넥타이를 매야 하는지, 어떻게 지팡이를 휘둘러야 하는지 조언하는 역할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논리적인 철학과 질서 정연한 원칙을 갖춘 인생을, 감각을 영적으로 승화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인 인생을 설계하고자 했다.
감각 순배는 종종 매도되었고, 그러는 데에 정당한 면도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열정과 감정, 심지어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 방식의 생명체들마저 느끼는 것이 분명한 열정과 감정에 본능적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도리언 그레이가 보기에 감각의진면목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고, 감각이 여전히 야만적이고 동물적인 무언가로 인식되는 까닭은 세상이 그것을 굴복할 때까지 굶기고 고통을 가해서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대신 아름다움을 향한 예민한 본능이 가장 중요한 특징인 새로운 정신적 신조를 탄생시켜서 감각을 그 구성 요소로 삼을 수도 있었다. 인류가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를 살펴볼 때면 도리언은 상실감에 휩싸였다. 너무나 많은 것이 희생되었다.! 그야말로 하찮은 목적 때문에! 광적이고 고의적인 거부, 야만적인 형태의 자기 고문과 자기 부정이 있었고, 그것들의 기원은 공포였으며, 그 결과 무지한 인간은 애초에 피하고자 했던 타락보다 훨씬 더 끔찍한 타락을 맞게 되었다. 자연의 아이러니로 인해 은둔자는 사막의 야생동물들 한가운데로 밀려나고 들판의 짐승들을 삶의 동반자로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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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덮고 있던 어스름한 베일이 하나씩 걷히고 또 걷히며 조금씩 사물의 형태와 색채가 돌아오고 , 우리는 새벽이 오래된 양식에 맞춰 세상을 재창조하는 광경을 바라본다. 희뿌연 거울들이 힘없이 모방의 삶을 재개한다. 심지가 까만 양초는 버려둔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고, 그 옆에는 옛날에 탐독하던 반쯤 읽은 책이나 무도회에서 착용했던 작은 꽃묶음, 차마 읽지 못한 편지, 너무 자주 읽었던 편지가 자리한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비현실적인 밤의 그림자에서 눈에 익은 현실의 삶이 드러난다. 우리는 중단한 삶을 이어 나가야 하고, 힘을 내서 틀에 박힌 지겨운 일상을 하루 더 연장해야 한다는 끔찍한 의무감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 인간의 쾌락이 새롭게 쇄신된 세상이 펼쳐지리라는, 만물이 새로운 형태와 색채를 입고 탈바꿈한 세상이나 내면에 새로운 비밀을 품고 있는 세상이 펼쳐지리라는 간절한 열망을 지속해야 한다. 과거를 위한 자리는 거의, 전혀 없는 세상, 과거 때문에 의무나 후회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는 세상, 심지어 기쁨의 추억조차 씁쓸하고 쾌락의 기억은 고통스러운 세상이 펼쳐지리라는 간절한 열망을 오늘도 또 이어 가야 한다.
도리언 그레이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삶의 진정한 목ㅍ, 아니 진정한 목표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즉각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 줄 감각적 경험, 낭만에 필수적인 기묘한 요소까지 갖춘 감각적 경험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탐색의 과정에서 종종 자기 천성과 동떨어진 사고방식을 도입해 그 미묘한 영향력에 흠뻑 빠져들었다가 그 색채를 흡수하고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한 후에는 무관심해져서 내팽개쳤다. 그런 기묘한 무관심은 열정적인 성격과 양립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었으며, 사실 어떤 현대 심리학자에 의하면 열정적 성격의 조건일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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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로마의 의식은 그의 흥미를 대단히 자극했다. 매일매일의 희생, 고대 세계에 이루어진 희생을 전부 합한것보다 더 끔찍한 매일매일의 희생은 감각의 증거를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점, 그 구성에 원시적 단순함이 있다는 점, 인간 비극의 영원한 정념을 상징한다는 점 때문에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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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적 발달을 특정한 신조나 체제에 얽매어 두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고, 별도 없고 달도 바쁜 밤에 잠깐 머무르기 적당한 여관을 평생 살 집으로 착각하는 일도 없었다. 신비주의는 평범한 것에 낯선 감각을 부여하는 멋진 힘이 있고 항상 미요하게 반도덕적인 느낌을 동반했기에 잠시간 몰두했다. 또 독일에서 유행한 다윈주의 유물론에도 잠시 끌렸다. 인간의 사상과 열정의 기원을 뇌 속에 있는 어떤 상아색 세포나 몸속의 빨간색 신경에서 찾아내는 일로부터 기묘한 쾌감을 느꼈고, 영혼이 신체적 조건에 – 병이 있든 건강하든, 정상이든 기형이든 –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발상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삶에 관한 어떤 이론도 삶 자체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지적인 추론이 실제 행위와 실험으로부터 분리되는 순간 얼마나 공허해지는지 그는 통렬하게 느꼈다. 감각이 영혼에 못지않은 그것만의 수수께끼를 품고 있음을 그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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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사회의 규율은 예술의 규율과 같고, 그래야 마땅하니까. 사회에는 과연 형식이 필수적이다. 사회는 성대한 의식에 어울리는 위엄과 비현실성을 갖춰야 하고, 낭만극의 위선에 낭만극의 매력인 위트와 아름다움을 결합해야 한다. 위선이 그렇게 나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선은 그저 우리가 여러가지 매력을 발휘하도록 해 주는 수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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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아가 간단하고 영속적이며 믿을 만하고 한 가지 본질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사고가 얄팍한 사람들이 그는 참으로 놀라웠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무수한 삶과 감각을 지닌 존재였고, 내면에 낯선 사상과 열정의 유산을 품고 살아가는 복잡하고 다중적인 생명체이자 망자들이 물려준 무시무시한 질병에 오염된 육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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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도리언 그레이는 인류의 역사 전체가 자기 삶을 기록한 데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역사 속 사건들을 실제로 겪지 않았지만 그의 상상력이 역사를 그려내서 두뇌와 열정 속에 쏙쏙 심어 준 것만 같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 속의 사람들, 죄악에 그토록 진한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사악함에 그리도 찬란한 경이로움을 불어넣은 기이하고 대단한 인물들을 전부 실제로 아는 것 같았다. 그들의 삶이 자기 삶인 것만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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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그는 악행이란 단지 자신의 아름다움에 관한 가설을 실현해 줄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